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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 어린시절부터 NBA데뷔까지

MJDADDY 2018. 6. 22. 13:56

 안녕하세요.MJDADDY입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NBA 농구 선수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의 어린시절부터 NBA에 데뷔하기까지에 대해 간략하게 포스팅 하고자 합니다.

 

 르브론 제임스는 203cm의 신장에 113kg의 체중을 가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소속 선수입니다. 그의 포지션은 포워드이며 엄청난 점프력과 탄탄한 근육질로써, 웬만한 몸싸움에는 밀리지 않는 역대급의 체격을 가진 선수입니다. 거기에 상대편 수비를 순식간에 삭제 시켜버리는 돌파 능력, 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패스, 화려한 기술에 높은 득점 성공률,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의 백넘버는 23번입니다. NBA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할 것이고, NBA를 잘 몰라도 23번은 꽤 익숙한 번호일 것입니다. 전설적인 농구선수이며 농구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마이클 조던의 번호가 23번입니다. 조던을 존경하는 의미임과 동시에 그와 같은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나타내기도 한 겁니다. 아쉽게도 이번 2017-2018 시즌에서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준우승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를 4년 연속 파이널로 이끌었고 마이애미 히트 시절까지 포함을 한다면 우승 3회에 준우승 6회를 경험한 23번이 아깝지 않은 위대한 선수입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기 전, 농구 스카우트들은 그가 NBA에서 뛸 가능성과 기회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NBA에서 그의 첫번째 정식 게임을 하기 전에, 제임스는 수백만달러의 제품 홍보를 위해 스포츠 브랜드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가 NBA에서 신인 시즌을 마치기 전에, 스포츠 기자들은 그가 농구 명예의 전당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NBA슈퍼 스타 마이클 조던과 비교하는 것이 흔해 졌고, 일부 스포츠 기자들은 제임스를 "선택받은 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가 18세가 되었을 때 르브론 제임스는 압박을 다루는 것에 대해 한 두가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압박에 대처하는 제임스의 능력은 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스포츠 기자들과 그의 코치들은 제임스가 그의 나이에 비해 드물게 성숙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새로운 명성과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기대를 우아하게 다룰줄 아는 선수였습니다.


 2003년 고등 학교를 졸업하기 전 제임스는 프로 농구 팀들이 다가오는 시즌에 합류할 새로운 선수들을 선발하는 연례 과정인 NBA드래프트 자격이 있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 당시 NBA최악의 팀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드래프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카프스는 이 18살짜리 선수가 우리팀을 위대한 팀으로 이끌 것이라는 분명한 기대와 함께 제임스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카프스와 함께한 제임스의 첫번째 시즌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챔피언십으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팀이 전년도보다 두배나 많은 경기에서 승리하도록 도왔고 2003-04년 시즌 말에 제임스는 신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84년 오하이오 주의 애크론시에서 태어난 제임스는 어머니인 글로리아 제임스가 16살 때 그를 낳았습니다. 글로리아는 제임스가 어렸을 때 그를 부양하려고 애썼지만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기에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제임스가 다섯살쯤 되었을 때, 그와 그의 어머니는 일년에 일곱번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2년 동안 제임스는 수양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글로리아의 오랜 남자 친구인 에디 잭슨은 제임스의 아버지 역할을 해 왔지만, 제임스가 어렸을 때부터 마약을 팔아 왔고 이후에는 사기 죄로 감옥에 다녀오는 등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잭슨은 르브론에게는 항상 자상했고 둘은 잘 지냈다고 합니다. 그들이 겪었을 수도 있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임스와 그의 어머니는 가깝고 지지적인 관계를 맺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한 스포츠 잡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의 전부이다.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 또래의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운동을 잘했으며 농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거의 없었지만 르브론은 3학년 때까지 전국의 농구 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NBA스타보다 더 많은 팬을 확보한 고등학교 농구선수로 유명했으며 오하이오 전역의 팬들의 열렬한 헌신을 받았습니다. 세인트빈센트 세인트 메리 고교팀은 제임스가 학교를 다닌 4년 중 3번을 디비전 III주 대회에서 우승했고 2002년 USA투데이가 선정한 1위의 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임스는 2학년과 4학년을 통틀어'올해의 농구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스포츠 다이뷰는 2002년에 제임스를 표지에 올려 놓았는데 48년 만에 여덟번째 고등학교 농구 선수가 표지에 등장한 일이었습니다.

 일단 제임스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소문이 나자, 홈 경기는 그가 경기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수많은 팬들을 수용하기 위해 애크론 대학의 경기장으로 옮겨질 정도였습니다. 이 게임들 중 일부는 ESPN과 ESNA에서 전국 시청자들에게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모든 관심은 약간의 가벼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제임스는 그의 어머니가 새로운 Hummer H2를 사기 위해 10만달러를 대출 받은 사실에 대해부정적인 언론을 받은 적도 있었고, 클리블랜드 매장으로부터 845달러 상당의 두개의 스포츠 셔츠를 받은 사실로 인해 출전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프로 선수의 재정적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트에서는 모두 제임스가 농구 슈퍼스타라기보다는 침착하게 팀의 일원처럼 경기를 계속했다는 데에 동의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임스가 대학에 갈 것인지 아니면 고등 학교를 졸업한 직후 NBA로 갈 것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다음 단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제임스는 3학년 때 드래프트를 선언을 했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르브론은 2003년 NBA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됩니다. 고등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 선수가 되기로 한 제임스의 결정은 선수들이 그렇게 어린 나이에 NBA에서 뛸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반대로 르브론의 지지자들은 만약 그 선수가 천부적인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스포츠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은 대부분의 고등 학생들이 그들의 플레이 능력을 향상시키고, 교육을 받고, 더 성숙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이용하면서, 대학에 먼저 가는 것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그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제임스는 대학을 건너 NBA로 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NBA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끔찍한 시즌을 마감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2003년 6월에 자신들의 미래를 다시 짤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제임스를 선택하고, 이 18살의 선수가 그들의 운명을 바꾸기를 바랐습니다. 키가 6피트 8인치, 몸무게 240파운드인 제임스는 확실히 NBA선수의 일부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르브론을 둘러싼 과대 광고는 아닌지 아마추어 대회보다 훨씬 더 경쟁적인 프로 농구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을지 궁금해 했습니다. 제임스가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2003년 가을에 공식적으로 NBA에 데뷔했을 때, 그는 많은 선수들의 우려에 대답했습니다. 캐벌리어스 팀은 경기에서 졌지만 제임스는 대부분의 신인 선수들이 기대할 수 있는 데뷔 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25득점, 9개의 어시스트, 6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가끔 미숙함과 젊음을 보여 주기도 했고, 그가 고등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마이클 조던처럼 경기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제임스는 신인 시절에 아주 잘했습니다. 그는 2003-04시즌을 경기당 평균 20.9 득점, 5.5리바운드, 5.9어시스트로 마쳤습니다. 그는 경기당 득점, 총점, 어시스트, 도루를 포함한 여러 부문에서 리그 상위 15위 안에 들었으며, 2004년 4월, 제임스는 2003-04시즌의 신인상을 받았습니다.